[인터뷰] “창의적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지금 이 책이 필요한 이유

동남아시아 통사로 ‘창의적 수용과 융합’을 말하다

문화관광체육관광부 2020 세종도서 선정작

 

동남아시아사 :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동남아시아사 (책과함께,2020)>_교보문고 2020 인문교양 브랜드전: 책과함께

 

오랫동안 동서양의 연결 통로로 주목받던 동남아시아 지역을 자세히 들여다본 책이다. 지난 세계사에서 동남아시아는 대부분 주변 지역으로 여겨졌다. 대항해 시대의 향료 무역 거점지, 각종 천연자원의 보관소, 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겨우 독립한 식민지 등 무역을 위해 ‘기능’해야 했던 지역이자, 식민주의의 ‘피해’를 입은 나라로 그려졌다. 그러나 책 <동남아시아사>는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이 지리적 환경을 기반으로 어떻게 자생적인 문화와 질서를 구축했는지를 일관된 주제로 보여준다. ‘창의적 수용과 융합’이라는 대주제에는 지난 2천년사 동안 동남아시아 지역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고유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만달라 구조’와 함께 서구적 시각의 국경 개념을 탈피하여 다양한 문화, 문물을 융화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 주는 시사점은 인상 깊다.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이문화 간 접촉이 이루어지며 갈등이 계속되는 현대사회에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벼려온 포용의 가치관은 새로운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남부 태국과 남부 필리핀의 역사까지 포괄하고 있는 이 통사에서 독자는 수동적으로 주변화되었던 지역의 새로운 면모를 역동적으로 엿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사>를 통해, 다양성 속 융합적 세계관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방대한 지역의 역사를 어떻게 단권으로 집필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동남아시아 통사를 쓰는 것은 늘 생각하고 있었다. 동남아시아 통사를 다룬 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대학교에서 동남아시아사를 다룬 책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저’ 형태다. 하나의 주제로 동남아시아사 전반을 꿰뚫는 책을 단독 집필하기까지 대략 15년 정도 걸렸다. 자료를 모으는데 10년, 쓰는 데 5년 걸렸다. 정년을 맞기 전 2020년 동남아시아 통사가 나와서 기쁘다.”

 

  • 집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지역별 연구 편차가 있었다. 어떤 나라는 연구가 많이 되어있고 또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자료를 다 읽고 하나의 주제를 구상하고, 책을 기획하기까지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 역사 서적이라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은 없었나요?

“역사 서적을 쓸 때, 단어 하나 고르는 것 자체가 해석이다. ‘반란’이라고 쓸지, ‘봉기’, 또는 ‘소요’라고 쓸지 선택하는 단어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각 챕터의 제목과 용어를 선정할 때에도 해석의 문제를 늘 신경 썼다. 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가급적 중립적으로 썼다. 서구의 시선이 담긴 기존의 연구 도서는 오리엔탈리즘적이란 한계가 있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자체적인 입장만을 참고할 때는 민족주의적 측면만 부각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 외부에서의 오리엔탈리즘, 내부의 국수주의적 시선 각각에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내 주관도 중요하지만,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동남아시아를 소개하는 통사다. 한국에 동남아시아 저변을 확대하고자 쓴 것이기에 내 주관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내 역사관을 심지 않도록 특히 조심했다.”

 

  • ‘만달라’라는 기본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동남아시아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달라 구조로 통사 주제를 설명한 이 책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문화, 문명은 ‘지리’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세계 4대 문명의 경우도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지만, 특징이 각기 다르다. 이 특징에 영향을 준 것이 지리적 환경이다. 동남아시아의 문화, 문명을 이해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지리적 환경이다. 오랜 시간 문명의 교차로로 외부 사람들과 끊임없는 접촉을 했던 배경이 오늘날의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사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융화적 사고, 내부적인 것과 외부의 것을 융화시켜서 창조하는 재주가 그것이다.”

 

  • 문화를 융합하는 현상은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데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만 특별히 그렇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융화의 정도가 굉장히 탁월하다. 책 주제 ‘창의적 수용과 융합의 2천년 사’와 같이, 동남아시아 역사를 들여다보면 외부 요소를 수용하고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오랜 시간 그들의 역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드러난다. 동남아시아 역사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진면목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왜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내색하지 않고, 트러블이 있으면 타협의 과정을 거치는지 이 모든 것이 그들을 둘러싼 지리 및 문화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샤와라(Musyawarah, 협의)와 무파캇(Mufakat, 토의)’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동남아시아 사회의 기본 의사 결정 기조이다. 극단적인 마인드를 가졌을 경우,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서 생존에 매우 불리했을 것이다. 강경하지 않고 간접적인 표현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역사 발전이 이루어졌고 훗날 사람들의 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진면목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표리부동’이란 단어를 인도네시아 관점에서 보면 ‘루꾼(rukun, 융화)’이다. 루꾼은 지리환경과 더불어 초창기 문화, 문명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태도다. 한국의 배타성과 달리, 표리부동에 관대하고 융화하려는 태도가 이들의 진면목이다.”

 

  • 저자로서 더 담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책 분량이) 에이포 용지 2,000장 분량이 나왔다. 역사가 방대하다 보니 고대, 고전, 근대, 현대 총 4권으로 나눠서 집필하려고도 해봤으나 개괄적으로 통사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에 동남아시아 역사를 다룬 책이 많이 있었다면 분권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동남아시아 문화 문명을 통사로 알리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못 실은 내용은 후속작에서 깊게 다룰 내용이다. 통사로서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디테일하게 내용을 보완하고 싶다. 동남아시아 사회를 넓고 깊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후속작은 어떤 내용과 형식일까요?

“네러티브 형식(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좀 더 쉽게 전달하고 싶다. 현대사에서 중요한 중국인 이야기도 다룰 예정이다. 교류를 시작한 것에서부터, 이주사, 현지인과의 트러블 이야기 등 주제별로 역사를 깊게 다룰 예정이다. 미얀마의 카렌족과 같은 소수민족의 상황, 육지였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이 왜 도서부에 섬으로 나뉘었는지, 보로부두르 사원의 건축 기간과 역사적 의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것이다.”

 

  • 동남아시아 지역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학문을 좋아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 동남아시아 지역학을 연구하시면서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인문학의 즐거움, 특히 역사의 즐거움은 ‘과거와의 대화’에 있다. 다른 나라의 지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알아가는 것처럼 흥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책도 쓰게 됐다. 창의적 수용과 융합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역사를 설명했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 ‘창의적 수용과 융합’이라는 이 책의 대주제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동질화, 지방화, 혼종화 등 문화 간 상호작용이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의 접촉과 변이, 융화는 늘 있었던 현상이지만, 문명의 그물이 섞이는 과정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강하게 일어난다. 그만큼 갈등도 많다. 동화, 혼종화, 이방화든 어떤 것을 선택해도 각 사회에 대립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창의적 수용과 융합의 마인드’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사를 살펴보면 중국계 민족과의 대립만이 아니라 융화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식민지 시기에 경제력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긴 했지만, 그 이전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사회와 동화하려 했던 노력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2천 년 동안 동남아시아 사회의 사람들이 뼛속 깊이 벼려온 수용과 융합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참고할 수 있는 한국어로 된 책이 생겼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업 시간 3시간 동안 방대한 역사를 모두 다루려다 보니 시간에 쫓겼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명과 인명이 학생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자세하게 하나씩 알려주다 보면 정작 재미있는 강의를 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제 책으로 참고하면 되니 나도 편하고, 책에 담지 못한 재미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서 좋다.”

 

  • 최근 온라인 서점 알라딘 북 펀드 프로젝트에서 2천만 원을 넘어 4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보람을 느끼시나요?

“한국 사람들이 책을 통해 동남아시아를 단순히 ‘관광 국가’, ‘후진국’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의 가치,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역사를 연구한 책을 냈더니 (위와 같은) 반응을 보고 독자들도 궁금해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책을 기획하며 동남아시아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배워야 할 점은 탐구하고, 교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책을 통해 학자로서 30년간 공부한 보람을 느꼈다.”

 

 

소병국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동남아시아 역사를 전공했다. 근·현대 말레이세계 민족주의 운동과 국민국가 건설을 주제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대학 동남아연구소 소장, 포드재단 연구 교수로 인도네시아 가자 마다대 객원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 전문위원을 역임하며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동서 세계 문명의 교차로인 동남아시아.
그동안 역사학자로서 이 지역 사람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외래문화를 수용하고 융합해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내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편 섞이고 합치고 갈라지며 생동한 이 동남아시아 2천 년 역사의 파노라마와 그 두터운 진면목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은 그 오랜 열망의 결과물이다.
 
 

 

 

바쁘신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소병국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