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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탐방대원들의 인터뷰에 대답중인 말레이국립대학교(UM, University of Malaysia) 학생 나니

우리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크지 않아요.

비슷한 아픔을 가졌지만

우리와 정서가 다른 이들

“우리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크지 않아요.” 지난 7월, 팩트’책’크 문화탐방대란 이름으로 말레이시아 식민 역사 소설 『해 질 무렵 안개 정원 (The Garden of Evening Mists)』의 배경을 조사할 때의 일이다. 소설의 주요 시대적 배경인 1940년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생각을 묻자, 말레이시아 국립대학교 (UM) 대학생 나니 씨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자신의 국가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해 큰 적대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이들의 대답을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깜깜했다.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싹트기 시작하던 7월이었다. 그 배경엔 1997년 말부터 시작된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놓여있었다. 약 20여 년이 흐른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일본제철(과거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각각 1억 원씩 배상하라며 한국인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관계 당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만큼 명료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뒤이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및 백색국가 제외 방침을 발표했고, 국내에서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과 함께 대규모 불매운동이 확산되었다. 일본과 역사적 외교적 갈등 관계에 놓인 한국 시민의 눈에 비슷한 식민 역사의 아픔을 가졌으면서도 그 정서가 다른 말레이시아 시민의 대답이 의아한 이유다.
소설 속 주인공 윤링(Yun Ling)의 태도가 한국인 독자들에게 낯선 것도 마찬가지다. 1941년 12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시아 일대를 무서운 기세로 침략해가던 시기, 그녀와 그녀의 언니 윤홍(Yun Hong)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수용소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윤링은 일본식 정원 유기리(Yugiri, 해 질 무렵  안개정원)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본인 정원사 나카무라 아리토모 (Nakamura Aritomo)에게 정원 만드는 법을 배우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며 상처를 치유한다. 이런 그녀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인공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일본식 정원’과 ‘일본인 정원사와의 사랑’을 중심 소재로 선택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팩트’책’크 문화탐방대(이하 문화탐방대)는 말레이시아 문학 비평가 자키르(S.M Zakir), 작가 탄트완엥(Tan Twan Eng)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설 속 장치들에 담긴 의미를 물었다. 그 과정에서 문화탐방대는 소설의 배경이자 식민 역사가 깃든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며 현장의 시민들이 ‘식민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학에서 식민지 역사를 그리는 방식

일본군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주인공 ‘윤 링’은 판사가 되어 생활하다가 기억을 점차 상실하는 병에 걸린다. 『해 질 무렵  안개정원』은 윤링이 수용소에서 죽은 언니와 지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관련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전개되는 액자식 구조의 이야기다.

역사는 승자와 패자 중심의 명료한 사실 기록.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은 문제

 

주인공도 스스로 모순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열망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문학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것만큼

객관적 사실을 마주하는 것 이상의 태도 요구

 

 

 

 

  •  ‘윤링’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일본식 정원 유기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특이하다. 우리는 이를 자연 속에서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소설이면 좋겠다. 독자들에게 생각하거나 느껴야 할 감정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들이 책을 덮은 뒤,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트완엥)

 “그 트라우마의 한 부분은 과거에 머물러 있고, 또 다른 어떤 부분은 현재에 극복됐다. 사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로 언니가 좋아했던 유기리 정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 혹은 상상이다. 윤링이 그러한 방식을 선택한 건 그녀가 좋아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열망이 그들에게 또 살아갈 힘을 준다.”(자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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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도 말레이시아와 같이 일본의 잔혹한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고, 남북 간 이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의 경험이 있다. (이 갈등은 1948년에서 1960년까지 있었던 말레이 비상사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념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에 발생했다.)
말라야 : 말라야 연합, 1945년 종전 이후 영국이 다시 말레이시아 일대를 점령했다. 이때, 싱가포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전역을 하나로 묶어 그 지역을 ‘말라야 연합’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 식민지배로 인해 상당한 반일 정서를 가지고 있고 역사적으로 그것을 극복한 방안 또한 일본에 상당히 적대적인 방식이었다. (1993년 조선 총독부 파괴가 그 예시이다.) 일본의 정원에서 치유를 받는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의 정서와 다른 부분이 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국 진출은 거의 30년이라는 훨씬 긴 기간이었다. 잔인하고 끔찍했지만 말레이시아에서의 일본 점령이 불과 3년인 것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말라야는 비상 사태에 뛰어들었고 12년 동안 계속되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이어진 혼란에 너무 지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상사태 동안 우리 자신을 위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한 싸움도 있었다.”(탄트완엥)

 “사실 말레이시아에는 일본식 빌딩이 별로 없다. (한국처럼). 그리고 우리는 상처를 지우려 하지만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지우진 않는다.  말레이시아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은 강력하게 과거를 뒤엎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의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윤링은 아리토모를 좋아하게 된다. 비록 주인공인 그녀는 모순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한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 열망이다. 결국, 이 소설에 따르면, 우리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복수로 답하기보다는 열망으로 답변한다. 그리고 이 열망의 방향은 평화다.”(자키르)

비록 주인공인 그녀는 모순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한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 열망이다

자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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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탄트완엥)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해 ‘아시아에 대한 대영 제국 지배의 끝(the end of the British Empire in Asia)’ 그리고 ‘아시아 전역에서 독립을 위한 투쟁의 시작(the start of the fight for independence all over Asia)’을 표시하는 거대한 분단선과 같은 시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시기 자체에 대해 매력을 느낄뿐더러 이 시기가 각 개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일제강점기는 소설로 쓰기에 흥미로운 소재라는 것 이외에 당신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는가

 “그 시기는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격변의 시기로 여겨진다. 지진적이고 거의 동시적인 글로벌 권력 이동은 전 세계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종종 역사적으로 주변적이라 여겨지는 사건들이 메인 페이지에서 일어난 일들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탄트완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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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의 주제를 ‘용서할 수 없는 과거와의 화해’라고 생각했다. 분단된 한국 사회 역시 윤링처럼 역사적 상처를 마주하고 평화를 위해 나아갈 수 있을까.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도출한 주제 자체로 인해 많은 생각이 든다. 과거를 용서할 수 없다면 화해할 수 있을까?

용서하고 전진할 수 있으려면 거대하고 숭고한 힘이 필요하며,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윤링의 입장이라면 내가 용서하고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 중 몇몇이 소설을 쓰는 이유다.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탐구하기 위해서 우린 소설을 쓴다. 나 역시 스스로 만들어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다 찾지 못했다. 화해의 과정은 인간성, 친절, 겸손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에 의해 이끌어질 때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계는 더 이상 그러한 역량을 갖춘 리더를 배출해내는 것 같지 않다.” (탄트완엥)

 “복수심, 증오감 등을 조금은 상자에 넣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제시해준다. 윤링은 큰 트라우마를 가졌지만, (언니가 죽고, 자신의 손이 잘려나갔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그녀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이 그녀 내면에 있다. 그녀는 아리토모를 내치지 않는다. 그녀를 찾아온 일본인 교수인 다쓰지 교수(아리토모의 목판화를 연구하러 온 교수)와 좋은 협력관계를 보이기도 한다.”(자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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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가로서 이 소설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평화를 얻기 위한 열망을 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난 삶 속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한 여성이 그렇게 복수심을 갖지 않고 (행동하는지) 그리고 다시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라고 있는지를 주목해서 본다면, 결국 그녀가 가장 열망하는 건 바로 평화임을 알 수 있다.”(자키르)

 

평론가 S.M자키르님이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중 몇몇이 소설을 쓰는 이유다.

특정 상황에서 스스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 탐구하기 위해서 우린 소설을 쓴다.

탄트완엥

『해 질 무렵 안개정원』은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 이외의 영역에 흥미를 느낀다는 작가 탄 트완 엥(Tan Twan Eng)의 면모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소설은 승패 중심의 사실을 명료하게 기록하는 역사책이 아니라, 발생한 사건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과 아픔을 주었는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창구였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의 일제 강점기가 한국과 달리 단 3년이었다는 사실도 스토리의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순된 감정을 느낌에도 ‘언니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 평화’와 같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 자신만의 치유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이 이 소설만의 시사점이다. 민족 정서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서, 개인의 극복 방식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구분할 수 있을까? 애초에 역사적 사건에 직접 놓였던 개인들이 역사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소설 속 윤링은 그녀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받아들이고 선택을 내렸지만, 윤링이란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 탄트완엥은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민족’으로 묶여있지만, 그 속에 속한 개인의 삶에서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방식은 이처럼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방식은 달라도, 치유하려는 마음은 같아

평화를 향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말레이시아의 독립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 기념물 Tugu Negara를 방문한 시민들이 말레이시아 국기 평화지도에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적고 있다.

독자들이 책을 덮은 뒤 스스로의 결론에 이르기를 바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따라 문화탐방대는 소설을 현실로 가져와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과 관련된 배경이자 역사적 배경이기도 한 페낭, 쿠알라룸푸르, 캐머런 하일랜드에 직접 찾아가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화탐방대는 윤링의 열망을 담아 ‘말레이시아 앤 피스 (Malaysia & Peace)’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아픔을 받아들이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담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 특별한 여정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UN에 20여 개의 평화 예술작품을 기증한 세계평화작가 한한국 님의 작품 ‘말레이시아 국기 평화 지도’가 함께했다.

 

그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겪었던 전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분쟁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고 생각해요.

쿠알라룸푸르 전쟁기념관에 방문한 외국인 페리스씨는 카슈미르에서 왔다. 지난 60년간 그가 사는 지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보통 사람처럼 사는 것’을 평화의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영국의 오랜 분할 통치를 겪은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내던져진 지역에 살며 어릴 적부터 전쟁을 겪은 그는, 상처를 극복하려면 ‘인종, 종교를 뛰어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류애가 가장 필요하다’는 진심을 전했다.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루어진 역사교육과 반일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워낙 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거쳐간 배경 때문에 당시의 일로

반일 정서가 생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배우고 있고, 우리 사회에 서로 다른 인종이 살아간다는 것을 받아들인 지 오래예요.’ 말레이시아에서 역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물었더니 나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16세기 초부터 1824년까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많은 나라들이 거쳐 간 배경을 자세히 배운다고 설명했다. 두 학생은 일제강점기가 말레이계 말레이시아인들에게 큰 반감을 사지 않았지만, 과거 중국계 말레이인들에게는 억압적인 시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기술,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역사를 거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들은 교육제도 및 좋은 리더도 중요하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학교 밖에서도 존중과 조심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페낭 식민 박물관(Colonial Penang Museum)의 주인 자스민씨

완전한 평화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부모님은 페라나칸(Peranakan, 중국계와 토착민의 후손)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식민시기 유산을 소유하게 됐는지 물었더니, 주인 자스민 씨는 이런 대답을 했다. 페라나칸은 15세기부터 말레이시아의 페낭 등 외국과의 교역이 많았던 번화한 항구 지역에 정착했던 중국 상인들과 토착민의 후손을 가리킨다. 그녀는 영국령 해협식민지 시기에 물질적으로 풍족했다고 대답했다. 18세부터 20세기의 식민 시기 동안 페낭의 상인들 사이에 오간 물건들을 50년 동안 수집한 박물관을 운영하는 그녀에게, 영국은 마을 관개 사업을 돕고, 말레이시아를 부유하게 해 준 나라로 남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배경일 뿐, 동서양 다인종의 조화가 어우러진 페낭 지역만큼 말레이시아 전역이 평화롭기 위해서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독립 이후 또 다른 분쟁의 위험에 놓인 카슈미르의 청년, 이주민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해협식민지 지역의 페라나칸, 지금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쿠알라룸푸르 중심부 대학생들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차이가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개인의 삶에서 역사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큰 편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초반에 식민지 역사에 대해 왜 한국 민족 정서와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차이에 주목하여 여정을 시작한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서로를 싫어하는 이슈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나 이건 분명 잘못됐어요. 그들에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면 부지런히 관계시키는 수밖에 없어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에요”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서 평론가 자키르 님은 우리가 서로 모르기 때문에 더욱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를 받아들이는 외국 사람들의 태도에서 발견한 새로움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같은 민족에 속했다고 해서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로이터> 김경훈 사진기자. Kim Kyung-Hoon ⓒREUTERS

개인의 삶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지나치게 단편적이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았다. 지난 사회가 그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피해자성’에만 주목해서 그들 개인의 삶에서 이루고 싶은 열망들을 너무도 몰라왔고 모른척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 탄트완엥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실을 찾으려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면 문학을 봐야한다” 라는 말을 전했다. 작가의 메시지처럼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학을 읽는 과정에서처럼 역사적 상상력을 세련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라면, 그 삶을 아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과연 역사 속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였을까.

 

<마인드>가 입수한 그들의 기록

 


이 글은 2019년 2학기 외대에서 실시된 HUFS TO THE WORLD 팩트’책’크 문화탐방대 프로그램에 참여한

마인어과 학우 4명 최지원(17), 김희수(14), 김경연(16), 김영은(16)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