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마인어과 동문에게 근래의 흔적에 관해 물었다. 이 글은 우리 중 누군가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익명 기고

 

이승우, 사랑의 생애(2017)

 

<진부하지만 계속해야 하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장승리

 

1. 이승우를 위한 변명

작가 이승우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의 한 문학지가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한 한국 작가’ 로 지목하였다는 것 정도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삶의 여정은 초기 대표작이자 자전적인 소설인 『생의 이면』에서 조금이나마 살펴볼수 있다. 이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사건은 그의 운명적인 첫사랑과 그 사랑의 필연적인 실패이다. 왜 그의 첫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지만 그의 첫사랑의 실패에는 변명이 필요하다. 같은 소설에 드러난 것처럼 이승우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사망 했고, 여러 이유로 그의 어머니조차 어린 그를 떠날수 밖에 없었다. 부모의 부재로 그에게 사랑은 항상 핍진한 존재였고, 그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본적도, 배운적도 없기 에 그에게 사랑은 낯설었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실패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그는 같은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에 대한 자신 의 능력 부족이 실패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을 유쾌한 감정 놀음이나 우연한 몰입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는 한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 다면, 사랑이야말로 그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생의 이면』, (p.258)

 

2. 왜 사랑인가?

그렇다면 이승우는 왜 그의 첫사랑이 실패한지 30년이나 지난 2017년에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로 소설을 써야 했을까. 이승우는 앞서 인용한 절에서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승우가 그렇게 적은 이유는 아마도 사랑이라는 모호한 존재가 갖는 어떠한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특별함을 정의하고자 시도한 글들은 많지만 여기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표현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사랑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중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나’와 ‘너’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더 이상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라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다. 이런 점이 신형철이 말하는 사랑의 특별함인데, 이승우가 생각하는 사랑의 특별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소설의 재제로써 사랑은 지독히도 진부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너무나도 특별하기 때문에 이승우는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실패한 첫사랑이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 이승우 본인은 사랑에 너무나 미숙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독자들은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 소설를 낳았을 것이다.

 

3. 사랑의 생애

『사랑의 생애』는 형배, 영석, 선희 세 사람의 사랑과 삼각관계를 그린다. 형배와 선희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선희가 용기를 내어 형배에게 그녀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형배는 ‘나는 지금은 누구를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대답으로 그녀를 거절한다. 이 소설은 사랑에 자격을 결부시킨 형배의 대답의 의미를 해체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간적 배경은 형배가 선희를 거절하고 3년이 지난 시점이다. 형배는 선희를 지인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예상치 않았던 만남 이후 형배는 그가 3년전 이기적인 대답으로 거절했던 선희를 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후 형배는 선희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선희는 이미 그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영석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뒤였다.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이승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랑의 생애』는 삼각관계라는 연애소설의 고전적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말을 다른 표현으로 옮긴다면 『사랑의 생애』는 다소 진부한 서사 구조를 갖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점이 이 소설을 읽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애초에 서사적 참신성이나 전개적 쾌감을 목표로 쓰여진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에 대한 소설이다. 이 사실은 주인공들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데, 세 명의 주인공들은 독자가 일상에서 마주칠법한 흔한 이름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처럼 여겨지도록 주인공들은 형배, 영석, 선희로 남을 뿐 그들의 이름에게는 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소설은 어떤 특정한 인물의 흥미로운 로맨스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독해를 요구한다. 독자는 사랑에 대한 작가 이승우의 사고의 궤적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궤적과 비교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여러 장치들을 고안하였는데, 이 소설이 쓰여진 문체가 그 중 가장 대표적이다. 알려진것처럼 이승우는 중문 형태의 문장을 즐겨 구사하는 작가이다. 앞서 언급한 초기작 『생의 이면』에서부터 이러한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 바로 『사랑의 생애』이다. 또한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이승우는 의도적인 반복을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반복과 변주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사랑을 명확하게 그려보였고 이를 지켜보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의 궤적을 반추하고 그려보도록 하였다. 인용할 다음의 문장들을 통해 위에서 서술한 이승우의 문장적 특징들을 느껴볼 수 있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사랑 앞에서 자기 몸을 한껏 낮추면서 동시에 사랑을 한낱 자격의 문제로 끌어내린다.

자격은 ‘지금’ 없을지라도, ‘언제든’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얻거나 잃을 수 있다. 잃거나 얻을 수 있다.

언제든 잃을 수 있으므로 얻었다고 우쭐할 것이 아니고 언제든 얻을 수 있으므로 잃었다고 아쉬워할 것도 아니다.”

-『사랑의 생애』, (p.15)

이승우는 자신이 그린 궤적이 가장 완벽한 곡선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독자가 그리는 곡선 역시 무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자신의 ‘사랑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이승우가 『사랑의 생애』를 통해 목표로 한 것이며 이 소설을 읽을 이유가 되는 것이다. (끝)

 

 

 

 

*<흔적에 관하여>는 마인어과 동문 여러분의 자유 기고로 구성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 다녀온 여행지, 기억에 남는 순간 등 여러분에게 남은 흔적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동문 여러분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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