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갈때면 그 사람의 서재를 가장 먼저 구경하곤 한다. 평소엔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어보기 위해서. 그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텍스트들을 짐작해보기 위해서.

 

오늘은 마인어과 동문들에게 ‘당신이 궁금하다’는 말 대신 당신의 책장을 엿보고 싶다 했다. 

다음은 익명의 마인동문 네 명이 제각각의 이유로 그들의 책장에서 꺼내온 네 권의 책들이다.

 

 



익명 A. <약속을 해석하는 학문, 법학>

 

 

교양법학 강의

이상수 지음

필맥 / 2017. 8. 25.

 

 

 

필자는 말레이-인도네시아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학생이다. 법학 초보자로서 법학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학과 공부나 상식에 도움될 만한 법학입문서 한 권을 감히 추천 드리고 싶다.

  법학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동의하는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전에 쓰여 있는 문장들은 그 사회구성원이라면 동의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항상 그럴까? 인도네시아 건국이념 빤짜실라(Pancasila) 제1조를 보자. [Ketuhanan Yang Maha Esa: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다. 이 문장은 모든 인도네시아인의 공통된 정서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장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누군가는 그 ‘유일신’이 기독교의 신인지, 이슬람의 신인지 규정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는 ‘종교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표현한다. 반면에 누군가는 반드시 ‘유일신’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진다. 이들은 본래 다신교인 힌두교에서 유일신을 규정하고, 불교나 유교처럼 본래 무신교(無神敎)인 종교에서 부처나 공자를 신으로 승격하게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고 해석한다. 모든 법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인 건국이념도, 다양한 해석과 의견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법은 구성원 간의 최소한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립되는 해석들 사이에서 갈등도 일어나고, 학문이나 사회의 발전도 일어난다. ‘임금님의 말씀은 과연 법인가?’라는 비판이 법학도, 사회도 발전시켰듯이 말이다. 법학은 결국 ‘약속을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추천도서 [교양법학강의]는 필자의 법학 입문서다. 실용적인 내용위주로 다룬 입문서와는 다르게 법학을 배우는 목적, 법학이 추구하는 정의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법학의 정신을 다루었다.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고 학과 공부든, 일상생활이든 도움이 된다는 분이 또 나온다면 필자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익명 B. <우리, 이 사람의 일기를 훔쳐볼까요>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시노다 나오키 지음

시노다 나오키 그림

앨리스 / 2017. 2. 10.

 

  요즘은 어딜봐도 음식, 음식, 음식이다. TV만 틀었다 하면 ‘맛집’에서 한 숟가락 푹 뜨며 감탄하는 연예인이, 또 저 채널에서는 소위 ‘먹방’ 여행을 즐기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한 무리, 또 다른 채널에서는 쉽게 따라해보는 집밥 강의가 한창이다. 광고도 음식, 길거리를 걸어도 음식, 새로 생긴 저 가게도 역시나 카페 아니면 음식점. 한국인이 과연 이 정도로 식도락의 민족이었던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눈이 아플 정도로 형형색색인 음식 향연을 보고있자니 가끔은 먹어보지 않은 음식까지도 질릴 정도다.

  그럼에도 다시 ‘음식’이다. 마음이 허하고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 지 모를 때, 잠시 멈춰 숨을 가다듬어야 할 때,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하기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도심 밖으로 도망치는 것도 과하다고 느껴질 때.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는 우리에게 일상 속 휴식의 손길을 뻗어 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 요리 100선>을 보며 팔을 걷어붙여보려다 생전 이름도 못 들어본 재료 목록를 보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편백나무 도마, 잘 벼려진 칼, 무쇠주물냄비.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이번 기회엔 잠시 넣어둬도 좋다. 당신이 해야할 것은 1) 잠시 숨을 가다듬고 2)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서 3)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펴는 것 뿐이다.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가지 않아도 좋고, 굳이 책에 있는 모든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좋다. 어딜 봐도 평범한 직장인의 평범한 끼니가 평범한 솜씨로 그려져 있으므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시노다라는 사람의 23년치 그림일기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타인의 23년 인생을 식사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또 딸을 가지는 일련의 인생 대소사를 눈으로 더듬어 읽어가다보면 내 인생의 대소사도 그림일기마냥 단순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마치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대접받는 것처럼, 딱 한 끼만큼의 소박함으로 과하지 않게 살며시 전해져오는 따스함. 다른 사람의 일기를 엿볼 때보다 시노다씨의 일기를 훔쳐보는게 더 즐거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익명 C. <건강한 마음을 위한 자습서>

 

 

 

자존감 수업

윤홍균 지음

심플라이프 / 2016. 9. 1.

 

 

  우리는 ‘평범한 삶’을 향해 질주하는 세상에 서 있다. 각자의 가슴엔 저마다의 우울을 품었고, 책임의 창끝은 습관처럼 자신을 향한다. 이와 다른 건강한 마음은 근본적으로 자존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들어왔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책이다. 자. 이 중에 너의 이야기를 찾아보라고, 이런 해결책들이 있으니 반복하라고 말해준다. 우리는 잘 차려진 뷔페에 온 것이라 생각하고서 페이지를 넘기며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이야기들을 마음에 담으면 된다. 적당한 표현법을 찾지 못해 뭉뚱그려져 있던 발가벗은 생각과 마음을 저자의 언어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 다정함에 위로받게 될 것이다. 위로와 해결책을 모두 건네는 따뜻한 책이다.


 

익명 D. <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당신에게 >

 

 

마음의 돌 어둠의 혼 미망 말하는 돌 외 (20세기 한국소설)

김원일, 문순태, 송기원 지음

창비 / 2005. 11. 25.

 

 

  단편소설임에도 상당히 감명 깊게 읽어 다른 분들과 이 책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소설을 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수험생 시절, 아름다운 얼굴을 처음 읽었을 때 에 느낌은 난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해설을 아무리 찾아봐도 속 시원하게 이 작품을 해제할만한 설명이 보이지 않았고 이해할 수조차 없어 답답함을 많이 느꼈었습니다. 그 답답함을 마음속에 머금은 채 졸업을 하였고, 고등학교 3년을 돌아보며 이 소설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아마도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은 채로 마쳐 그랬나봅니다. 다시 펼쳐든 글에서 저에게 ‘자기혐오’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학창시절 제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모든 나쁜 일은 내 탓을 하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던 그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정말 중요한 인생의 방향을 찾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품에서 ‘자기혐오’의 감정을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 그것을 ‘아름다움’까지 연결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기혐오의 감정에 빠져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평생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혐오’도 결국에는 내면의 ‘자기애’가 바탕이 되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도 분명 ‘사생아’라는 근본적인 아픔 때문에 자기혐오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숙명적인 것, 그리고 운명에 따라 정해지는 것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로 인해 한층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익명의 서재>는 마인어과 동문 여러분의 자유 기고로 구성합니다. 책장에서 꺼내 동문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기고 : newsletterhufsmain@gmail.com